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벨 1세 (문단 편집) === 암살 === 의심병이 점차 심해지면서 자기 가족들과 분리된 파벨 1세는 자신의 호위연대를 궁에 상주시켜 놓고 있었는데 마침 호위연대장을 출타시킨 그날밤 사건이 터졌다. 궁에는 이미 내통자가 있었고 새 황제 치세에 쫓겨난 귀족들이 허락도 없이 궁에 들어온 것. 사건은 치밀하다기보다 우발적으로 일어났다. 황제가 오기전 술에 대판 취해서 서로 눈치만 보다가 황제가 옆방에 들어가자 몸으로 막고 황제에게 퇴위 서류에 사인하라고 강요했으나 황제가 화가 나서 거부하며 나가자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시절 '애첩으로 총애받다가 쫓겨난 신하'가 술이 거하게 취해서 용감하게 파벨을 태클(?)로 넘어뜨린 다음, 금속상자로 관자놀이를 내리쳤고 놀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베니히센 백작이 주도했다곤 하는데 [[영국]]의 지원설도 있고 단독적인 범행은 아니었다. 이미 귀족들에게 인심을 잃은 건 오래 되어서... 후일담으로 베니히센 백작은 소식이 알려지고 3일 연속 잠도 못자고 울고 있는 [[알렉산드르 1세|알렉산드르]]에게 '''"그만 울고, 통치를 하십쇼!"''' 라 일갈했다고 한다. 후에 알렉산드르는 쿠데타 가담자들을 포상하지도 않고 추방하지도 않고 그냥 면직 처리만 했다. 이것이 알렉산드르의 솔직한 심경이었을 듯. 사실 아들들인 [[알렉산드르 1세]]와 차남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콘스탄틴 대공]]은 그 암살 음모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암살까지 동의했는지는 현재까지 불분명하다고 하는데 최소한 아버지의 퇴위까지는 동의했고 "해치지는 않는다" 정도로의 동의가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덕분에 알렉산드르는 어머니 [[조피 도로테아(뷔르템베르크)|마리야 표도로브나]]에게 부친을 살해했다는 강한 의심과 질책을 들었고 치세 내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파벨 1세도 가족들이 자신을 암살한다는 음모론에 빠져 멀쩡한 아내와 이혼하고 정부와 재혼하여, 황후 [[조피 도로테아(뷔르템베르크)|마리야 표도로브나]]에게서 낳은 알렉산드르와 그의 형제들의 계승권을 박탈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이는 파벨 1세 본인이 살리카법까지 제정하며 확립한 후계구도를 엉망으로 만드는 행위였다.] 결국 알렉산드르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암살까진 몰라도 정치적으로 제거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